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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보성(kimboss)(2015-08-25 13:00:18, Hit : 296, #6559) 
subject  이케다 리요코 - 에로이카

나온지 좀 오래된 만화긴 합니다만, 어제 이케다 리요코 여사의 '에로이카'를 읽었습니다. 처음엔 한 서너권 읽고 다음에 더 읽으려고 했는데 읽다 보니 한권만 더, 한권만 더... 하다가 결국 밤새서 다 읽었네요. ^_^;;;;;;;;;; 덕분에 어제 수면시간이 3시간 밖에 안됐습니다만 일단은 쌩쌩합니다. ^^;;;

역시 거장의 터치랄까요. 대충대충 그린 것 같은데도 나폴레옹과 그 주변 인간군상의 심리가 쏙쏙 들어옵니다. 만화의 주인공은 일단은 나폴레옹입니다만 그보다는 탈레랑, 푸셰, 조세핀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이야기를 끌어 나가는 것도 이 사람들이고...

탈레랑과 푸셰야 당시의 역사에 관심 있는 분들이면 모를 수가 없는 거물들이죠. 출신도, 취향도, 추구하는 이상도 완전히 다른 서로 대조적인 두 사람이 치열하게 대립하면서도 결국엔 똑같은 결론으로 가는 걸 죽 읽어 보면 소름끼칠 정도입니다. 마키아벨리스트의 사고는 결국 같은 결론으로 간다는 걸까요? 작가는 나폴레옹이 이 두 사람을 너무 과소평가했고 그것이 결정적인 파멸의 원인이 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조세핀... 이 여자에 대해 이 만화보다 실감나게 묘사한 매체는 없는 것 같아요. 막스 갈로의 소설에서도 조세핀의 심리가 이렇게 와 닿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여성 작가라 여자들의 심리를 더 잘 묘사하는 걸까요? 암튼 누가 봐도, 어떻게 봐도 조세핀은 나폴레옹에 어울리는 여자는 아니었습니다. 허영에 들떠서 남편이 어떤 사람인지도 잘 모르고 멋대로 놀아나다가 사랑이 떠나간 다음에야 후회하고 매달리는 멍청하고 헤픈 여자죠. 어떻게 이런 여자 밑에서 외젠, 오르탕스 드 보아르네 같은 훌륭한 자식들이 나왔는지 알다가도 모를 노릇입니다. 말년의 나폴레옹 곁에 서 있는 오르탕스의 모습은 참 사람 짠하게 만듭니다.

외젠 드 보아르네는 참 사람이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폴레옹의 가족들 중 가장 성실하고 유능하고 충성스런 인물이었습니다만, 나폴레옹의 친자식이 아니었기 때문에 정당한 대우를 못 받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나폴레옹이었다면 외젠이 친자식이 아닌 게 너무나 안타까웠을 것 같습니다. 외젠이 온갖 꼴을 다 당하면서도(어머니는 이혼당하지, 러시아에선 뒤에 버려지지, 여동생은 싫어하는 결혼을 강요당하지...) 끝까지 나폴레옹에게 충성하는 것을 보면 정말 감동적이죠. 이런 인물이었기에 나폴레옹 몰락 후에도 장인 밑에서  평온하게 살다가 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떤 군주가 이런 인물을 신하로 거두고 싶지 않겠습니까.

나폴레옹의 형제들에 대한 이야기도 안할 수가 없군요. 그 인간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고 있는데도 이 만화에서 보면 욕이 자동으로 튀어 나옵니다. 읽는 내내 '이 독사 같은 것들...' 하면서 혀를 끌끌 찰 수 밖에 없어요. 어떤 놈은 무능한 주제에 욕심만 많고, 유능한 놈은 딴 생각이나 하고 있고, 여동생이란 것들은 올케 욕하고(조세핀은 욕먹을만 하긴 했습니다만...) 오빠 뒤통수 치기에 여념이 없고... 이딴 놈들을 형제랍시고 벼슬 주고 결혼상대 찾아주고 왕 자리에 앉혀주고 죽어라고 챙기는 나폴레옹을 보면 참... 누가 코르시카 촌뜨기 아니랄까봐 말입니다.

지금까지 나폴레옹의 주변 인물들 이야기만 잔뜩 했습니다만, 사실 이런 사람들을 통해서 그의 모습을 보다 입체적으로 조명하지 않았나 합니다. 너무 강한 빛은 직접 보기 보단 비춰진 모습을 보는 게 보다 선명하게 볼 수 있으니까요. 그는 정말 모순적인 사람인 것 같아요. 능력과 품성의 불균형이 두드러진다고 할까나. 당대의 누구보다도 영민하고 교양 있으며 비견할 데 없는 통찰력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여자 보는 눈은 꽝이었죠. 인류 역사상 비교할 곳을 찾기 힘든 위대한 개혁가이면서도 가족주의의 인습과 혈통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촌뜨기의 모습도 같이 가지고 있었죠. 19세기를 모순의 시대라고 합니다만 나폴레옹은 그 모순을 온 몸으로 체현한 사람이랄까요. 과연 시대의 총아 아니랄까봐 말입니다. ^^

전쟁의 시대를 그린 만화니만치 이 만화에는 수많은 병사들이 나옵니다. 작가가 썼듯이 누군가의 아들이요 아버지이고 남편인 사람들 말이죠. 그 사람들이 무슨 벌레 같이 죽어가는 모습을 작가는 가감 없이 그립니다. 아니, 솔직히 이야기해서 숱한 군중씬들은 좀 대충대충 그렸어요. 전투장면이 코믹만화체로 대충 그려진 부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어째 그게 더 비극적이네요. 공화정의 이상에 불타는 빛나던 시절엔 전투장면도 죽어가는 장면도 리얼 그 자체입니다. 기병들의 칼에 목이 날아가고 대포에 반토막이 나서 나뒹구는 병사들의 시체가 토나올 정도로 리얼하게 그려졌습니다. 공화정 시절엔요. 나폴레옹이 황제가 된 후부터 전쟁장면은 코미디로 바뀝니다. 병사들은 코믹체로 뭉게져서 나뒹굴고 있는데 나폴레옹은 고고하신 황제가 되서 전쟁의 비극이나 읊고 있죠. 그 극적인 대비를 통해서 애초의 이상에서 벗어나 권력에 집착하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추악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이케다 여사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아요. "병사들이여, 황제 나폴레옹은 자신을 위해 싸울 뿐이다. 그대들은 그의 장기말로 이용당하고 있을 뿐이다."

이 만화에서 아쉬운 것은 딱 하나뿐이었습니다. 번역이요. 번역자가 프랑스어 고유명사를 몰라서 인명이 뒤죽박죽입니다. 외젠을 으젠으로 써 놓질 않나, 초반에 뮐러가 누군지 한참을 고민했는데 뒤에 보니 뮈라(Murat)였네요. 술트는 스루로 써 놓고... -_-;;; 지명도 엉망일 것 같은데 그것까지는 확인 못했구요. 번역만 빼면 거장의 숙성된 솜씨와 철학을 흠뻑 즐길 수 있는 걸작이라고 평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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